Story behind
두사람의 만남
- Akiyoshi :
- 우리가 알게 된 계기는 Y씨 덕분이었죠?
- Motoike :
- 그렇네요, Y씨가 일주일에 한 번은 제가 운영하는 아뜰리에에 놀러 오곤 했는데 항상 멋진 옷을 입고 있었어요. 물어보니 Geoffrey B.Small이라는 디자의너의 옷이 었어요. 그때 이런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것은 제가 좋아하는 장인의 스타일이었습니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수련하던 시절에도 그런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직 브랜드는 아니었고 굳이 말하자면 공예가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에 있던 시절 저는 기술 연마와 가업인 가죽공예에 몰두했지만, 공예적인 표현과는 다른 형태인 모노즈쿠리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에 대한 열망을 항상 가지고 있었습니다.약 20년 동안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 유럽 전역에서 공예와 패션이 융합한듯한 모노즈쿠리를 봐왔기 때문에 더욱더 Geoffrey B.Small에 대한 흥미가 커졌습니다.
그래서 Y씨에게 들었던 아키요시상을 만나고 싶다고 제가 부탁해서 만남이 시작되었죠.
- * Geoffrey B. Small
- 아키요시씨가 운영하는 회사 Le Berger를 통해 전 세계의 커머셜디렉터로서 계약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베네토주 카바르제레에 거점을 두는 패션디자이너.
- * 모노즈쿠리
- 장인 정신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제조업과 그 역사를 나타내는 말(현재 일본 제조업의 번영은 일본의 전통문화, 고유문화를 근간으로 한다는 사관((史観)))
모토이케 다이스케의 독립에 대해
- Akiyoshi :
- 다이스케씨를 만났을 때는 MOTO에 계셨고, 독립하신다는 말씀은 전혀 안 하셨었죠?
- Motoike :
- 네 맞아요. 하지만 저는 911테러, 그 이후 3.11동일본 대지진을 보면서 역시 언젠가는 스스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계속 갖고 있었습니다.
MOTO 에서의 책임이 컸기 때문에 바로 진행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하나의 계기나 만남으로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저 스스로도 어떻게 전환해야 할지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키요시씨는 이제껏 제가 만났던 패션업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분이셨습니다.
대부분 패션에 관해서만 예기할 뿐 인테리어나 가치관, 미의식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아키요시씨와는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었고, 게다가 저와 같은 세대라는 점도 컸습니다. - Akiyoshi :
- 그게 2018년 무렵의 이야기네요. MOTO 를 떠나 독립하는 것이 구체화된 게
2019년이었나요?
그 당시 제게 독립을 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모토이케 다이스케의 작품을 표현할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 Motoike :
- 그렇군요. 패션업을 해오던 사람들이 작가를 어떻게 큐레이션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큐레이터는 학예사라든가 기획을 하는 사람입니다만, 아키요시씨는 정보 수집이나 정리,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아웃풋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까지 제안해 주는 큐레이팅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아키요시씨의 존재는 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모든 것이 셀프 프로듀싱이었던 저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라 신선했습니다.
- * MOTO
- 1971년 아버지이기도 한 인형작가, 모토이케 히데오가 설립한 가죽 브랜드. 현재는 아들들이 이어받아 직영점 5개 점포를 운영을 하고 있다.
모토이케 다이스케의 독립에 대해
- Akiyoshi :
- 다이스케씨를 만났을 때는 MOTO에 계셨고, 독립하신다는 말씀은 전혀 안 하셨었죠?
- Motoike :
- 네 맞아요. 하지만 저는 911테러, 그 이후 3.11동일본 대지진을 보면서 역시 언젠가는 스스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계속 갖고 있었습니다.
MOTO 에서의 책임이 컸기 때문에 바로 진행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하나의 계기나 만남으로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저 스스로도 어떻게 전환해야 할지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키요시씨는 이제껏 제가 만났던 패션업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분이셨습니다.
대부분 패션에 관해서만 예기할 뿐 인테리어나 가치관, 미의식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아키요시씨와는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었고, 게다가 저와 같은 세대라는 점도 컸습니다. - Akiyoshi :
- 그게 2018년 무렵의 이야기네요. MOTO 를 떠나 독립하는 것이 구체화된 게
2019년이었나요?
그 당시 제게 독립을 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모토이케 다이스케의 작품을 표현할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 Motoike :
- 아키요시씨와 토론하던 중에,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생각하며 깊게 사고하는 행위를 가르쳐주신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탈리아 수련 시절에 이탈리아인 스승님께서 제가 직장 밖으로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웃으면서 「두더지! 두더지!」 라고 놀리던 에피소드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저를 상징하는 추억이라 인상 깊었고, 그래서 브랜드 이름을 프랑스어로 두더지인 Taupe로 했습니다.
아키요시씨와 이야기하면서 재밌었던 것은 「이건 왜지? 거기에는 전부 의미가 필요합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듣고, 역시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요?
저희 경우에는 「그것을 전부, 제품으로 전달합니다. 말로 해버리면 끝입니다.」같은 것이 있지만, 정말로 전하고 싶었던 것과는 어긋남이 생겨버리고 말지요. - Akiyoshi :
- 큰 브랜드라면 그래도 그것이 성립하지만 처음 브랜드를 설립하는 경우에는, 0부터 1로 만들어 나갈 때는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럴까? 라는 점이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저는 그 부분을 특히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겔러리」의 모토이케 다이케의 전시에 대해서
- Akiyoshi :
- 그렇게 의논을 거쳐, 2020년쯤에 발표하기로 얘기하던 중에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네요. 앞서 911테러와 동일본 대지진의 키워드가 나왔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번 프로젝트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신형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사회의 폐색감이라고 할까요, 힘든 환경 속에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우리 업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모노즈쿠리의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나 할까요, 한걸음 더 나아간 거 같습니다. - Motoike :
- 아키요시씨는 그때 파리와 중국에서 전부 실시간으로 보고 계셨잖습니까.
Taupe 를 시작하고 나서,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가족을 중심으로 꾸려오던 팀이었지만, 지금은 가족이 없는 팀에서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긴장감이 있어서 그것을 구축하는 행위 자체를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사회에 나와 이런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저는 계속 제품을 만드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에 매우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지금 이 팀에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며, 이젠 제가 어떻게 힘을 내서 나아가야 하는지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발표하는 작품에 대하여
- Motoike :
- 저희의 첫 만남부터 지금에 오기까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지금은 확실히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손이 움직입니다. 이것은 아키요시씨와의 대화로부터 저의 방향성을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이번 전시를 진행할 때도 굉장히 난해한 컨셉과 테마가 주어졌지만 스스로 깊이 고민한 끝에 내놓은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 Akiyoshi :
-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가하지만, MOTO를 통해 모토이케 다이스케를 알고 계신 분들, 처음 저를 아시게 된 분들, MOTO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 등 다양한 분들에게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 Motoike :
- 지금까지의 경험과 저의 심금을 울렸던 어떤것들에 스스로 족쇄를 채워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 족쇄를 스스로 풀 수 있게 됐다고나 할까요?
누구든지 경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무언가에 자극을 받아왔던 것을 지금에 와서는 과거의 일로 잊어가고 있으며, 그런 부분을 의식적으로 인식했을 때 제작에 있어 사고가 바뀐다는 것… 제 경우는 「어디서 만들까」 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MOTO의 작업장이 미나미아오야마(南青山)에 있지만, 그곳에서는 절대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 Akiyoshi :
- 저도 MOTO 작업장을 이용하는 건 반대했었죠.
- Motoike :
-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없어요.
- Akiyoshi :
- 역시 제한하는 것을 없애야 한다는 부분이죠…
- Motoike :
- 맞아요! 그건 저도 애매한 부분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저의 감성의 족쇄를 푸는 행위에 가까운 것이었죠. - Akiyoshi :
- 저도 처음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던 건, 아무래도 MOTO 에서 해왔던 일이 몸에 배어있어서, 무의식적으로 MOTO의 청중(audience)들을 의식을 한다던 지, MOTO에서 허용되는 표현의 제품을 만드는 식으로 자신에게 제한을 걸게 되는거죠. 비로소 자신의 이름이 되려면, 그런 제한들을 전부 없애고 만들어져야 합니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지금부터 모토이케 다이스케의 작품이라는 것을 전달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25년 정도 MOTO에서 해왔던 것이 있다 보니 어렵네요. Taupe D.motoike에서의 일과, MOTO 시절 일의 가장 큰 차이는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지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제작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청중이 없는 상황에서 제작하고 있으니까요. - Motoike :
- 맞아요. 그것도 인생에서 처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요즘 와이프가 제게 자주 하는 말이, 매우 즐거워하며 작업장에 간다고 하더군요.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인터뷰를 하시던 중, 「껑충껑충 뛰면서 작업장에 간다」라고 말씀하신 걸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는 매우 잘 알거 같습니다. MOTO 에 있던 시절이 즐겁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제 아뜰리에에는 고양된 마음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그건 항상 손님이 있어 안정된 상황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감각입니다. 이 감각을 이번 작품에 표현하고자 합니다.
- Akiyoshi :
- 브랜드를 몇 십 년 동안 계속하면, 이렇게 하면 손님에게 팔린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죠? - Motoike :
- 네 맞아요. 그 경계선을 알아차리고야 말죠.
이번처럼 제 작품 만들기를 큐레이팅 하면서 지금까지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느낌은 없었기 때문에, 꼭 여러 사람들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가죽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라든지 모노즈쿠리부터 사람 만들기로, 그런 것들이 제 컨셉으로서 계속 있었습니다. 지금의 작품을 보면 「모토이케 다이스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Place
- Daisuke Motoike’s showroom
- Date
- July 2020